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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ji_makji 2025. 2. 9.
인하대학교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은 6·25의 와중이던 1952년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뒤떨어진 한국의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의 발의로 출범하게 되었다.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원으로는 이승만이 설립 운영하였던 한인기독학원(Korea Christian Institute)을 처분한 대금과,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 그리고 한국 거주민들의 성금 및 국고 보조 등을 기금으로 하고, 인천시로부터 교지를 기증받아 1954년 2월 ‘재단법인 인하학원’의 설립이 이루어짐으로써 금속, 기계, 광산, 전기, 조선, 화학공학 등 6개 학과가 설치되고, 1954년 4월 24일 인하공과대학으로 개교를 하였다.[2] '인하'의 이름의 유래는 「인천(仁川)의 하와이(荷蛙伊)」라는 뜻[3]이며, 미국의 MIT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 설립을 목표로 1954년 3월 31일 초대 학장에 한국인 최초로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천문학자 이원철 박사, 초대 이사장에 당시 부통령인 이기붕이 취임하였다. 1954년 4월 24일 신입생(179명)의 입학식을 가졌다. 1958년 3월 14일에는 대학원의 설립이 인가되었다. 1968년 9월, 인하공과대학이 한진상사(주)에 인수되면서, 한진그룹 故 조중훈 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성좌경 박사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197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인하공과대학은 지금의 인하대학교가 되었다. 초대 총장에 성좌경 박사가 취임하였다. 1984년 의과대학이 신설되었으며, 1990년 3월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인천에 기공하여 1996년 5월 지하 3층, 지상 16층 규모로 개원했다. 1997년 10월 31일 한진그룹 부회장인 조양호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고, 2002년 11월 17일 인하대 소유 기업인 한진그룹에서 473억원의 건립비를 지원하여 전자도서관 「정석학술정보관」이 2003년 9월 17일 개관했으며, 정석학술정보관은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다.[4][5] 2004년 4월 24일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글로벌 인하의 원년”으로 거듭나고자 ‘글로벌 U8 컨소시엄’의 전신인 ‘글로벌 U7 컨소시엄’을 창설하였으며 ‘글로벌 U8 컨소시엄’은 세계 대학간의 전략적 제휴를 표방하며 2004년 발족된 국제 대학 협의체로서 인하대를 포함하여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과 워싱턴대학, 호주 RMIT대학, 중국 하문대학, 프랑스 르아브르대학, 영국 헐대학, 이스라엘 하이파대학 등 7개국 8개 대학이 회원대학으로 참여하였다.[6] 2006년 2월에는 제2생활관 및 게스트하우스가 개관하였다. 2009년 3월에는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고[7], 2014년 10월 우즈베키스탄에 타슈켄트 인하대학교(IUT-Inha University in Tashkent)를 개교하였다.[8] 2014년 개교 60주년을 맞이하며 ‘60주년기념관’을 착공하였으며, 2016년 2월 준공되었다.[9] 2015년 2월 25일 개교 이래 최초의 여성 총장이자, 두 번째 모교 출신 총장으로 제14대 최순자 총장이 취임하였다. 최순자 총장은 '학생을 잘 가르치는 인하대', '연구를 더 많이 하는 인하대',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봉사하여 사랑받는 인하대'를 3대 슬로건으로 제시하고, 1학년 프런티어 학부대학 설립, 30개 World Class 연구실 지정, 인천시 공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 기부 및 10개 구·군 경영 컨설팅단 파견, 스마트캠퍼스 조성, Naming 기부 등을 통한 재정 확충 및 효율화를 추진하였다.[10] 또한, 인하대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시행하는 2016년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에 인천광역시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선정됐다.